크리스토퍼 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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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리스토퍼 크로스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로, 1979년 데뷔 앨범 『Christopher Cross』로 데뷔했다. 이 앨범과 싱글 "Sailing"으로 1981년 그래미상 5개 부문을 석권하며 AOR(Adult-Oriented Rock)을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Arthur's Theme (Best That You Can Do)"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0년대 초반 성공 이후 상업적 성공은 둔화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공연 활동을 이어갔다. 2020년 코로나19에 감염되었지만 회복하여 데뷔 40주년 기념 투어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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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로드리게스는 1968년 텍사스 출신으로, 저예산 영화 《엘 마리아치》로 데뷔하여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했으며, 디즈니+ 시리즈 연출을 통해 활동 영역을 넓혔다.
크리스토퍼 크로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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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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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Christopher Charles Geppert |
출생일 | 1951년 5월 3일 |
출생지 |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
장르 | 록 음악 팝 음악 소프트 록 |
직업 | 음악가 가수 작곡가 작곡가 |
악기 | 보컬 기타 |
활동 기간 | 1971년–현재 |
레이블 |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 프라이어리티 레코드 CMC 인터내셔널 |
관련 활동 | 마이클 맥도날드 (가수) 더 비치 보이스 버트 바카락 캐럴 베이어 세이거 피터 앨런 (음악가) Madison Cross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 딥 퍼플 |
웹사이트 | christophercross.com |
2. 초기 생애 및 음악 활동
크리스토퍼 크로스는 5세부터 9세까지 군의관이었던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일본 도쿄 요요기에서 살았다. 1979년 음반 『Christopher Cross』(일본 제목: 『남쪽에서 온 남자』)로 데뷔했다. 데뷔 당시에는 콘서트도 하지 않았고,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는 크리스토퍼 본인의 의향이었다. 천사 같은 하이톤 보이스로 단숨에 AOR을 대표하는 가수가 되었다. 이 앨범과 싱글 『세일링(Sailing)』은 1981년 그래미상 5개 부문을 석권했다. 특히 주요 4개 부문(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최우수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은 그래미상 역사상 처음이었다.[69] 이 곡은 빌보드 차트에서 1980년 8월 30일에 주간 랭킹 1위를 차지했고, 1980년 빌보드 연간 랭킹에서는 32위를 기록했다.
이듬해 스티브 고든 감독・각본의 영화 "미스터 아서(Arthur)"의 주제가 "뉴욕 시티 세레나데(Arthur's Theme (Best That You Can Do))"로 버트 바카락, 캐롤 베이어 세이거, 피터 앨런과 함께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뉴욕 시티 세레나데"는 빌보드 차트에서 1981년 10월 17일에 주간 랭킹 1위를 차지했고, 1981년 빌보드 연간 랭킹에서는 12위를 기록했다. 이 곡은 일본에서도 친숙한 노래로, 일본 오리콘 차트 외국 음악 싱글 차트에서 1981년 12월 7일부터 6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70]
2. 1. 초기 밴드 활동 (1970년대 초-1979)
크리스토퍼 크로스는 십 대 시절 베이시스트 앤디 샐먼, 키보디스트 롭 메이러와 샌안토니오에서 만났다. 게퍼트와 샐먼은 게퍼트가 기타를 치는 플래시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함께 크리스토퍼 크로스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오스틴으로 이주하여 드러머 토미 테일러를 영입했다.[6][7] 그곳에서 오스틴의 오디세이 사운드(이후 피칸 스트리트 스튜디오)에서 오리지널 곡의 데모 버전을 녹음하며 음반사에 보냈고, 돈을 벌기 위해 커버곡을 연주했다.[6][7] 이들은 자신들을 밴드로 생각했지만, 워너 브라더스는 1979년 초 크리스토퍼 크로스를 솔로 아티스트로 계약했다.[6][7][8]크로스는 보컬과 작곡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뛰어난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스틸리 댄의 도널드 페이건과 월터 베커는 크로스에게 앨범 참여를 요청했지만, 크로스는 거절했다.[9] 크로스는 또한 1970년 리치 블랙모어가 병으로 쓰러지자 딥 퍼플 콘서트에서 그를 대신하기도 했다.[7][10]
크로스는 동료 오스틴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의 전설적인 "넘버 원" 1962/1963년형 하이브리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의 원래 소유자였다. 본은 1974년 오스틴의 레이 헤닉의 하트 오브 텍사스 뮤직에서 이 기타를 구입했는데, 이는 크로스가 이 기타를 깁슨 레스 폴로 바꾼 지 불과 하루 뒤였다.[11]
3. 전성기 (1980-1984)
1979년, 음반 Christopher Cross(일본 제목: 남쪽에서 온 남자)로 데뷔했다. 데뷔 당시에는 콘서트도 하지 않고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는 크리스토퍼 본인의 의향에 따른 것이었다. 천사 같은 하이톤 보이스로 단숨에 AOR을 대표하는 가수가 되었다. 이 앨범과 싱글 세일링은 1981년 그래미상 5개 부문을 석권했으며, 특히 주요 4개 부문(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최우수 신인상)을 동시 수상한 것은 그래미상 역사상 처음이었다.[69] 세일링은 빌보드 지에서 1980년 8월 30일에 주간 랭킹 1위를 차지했다.
1981년에는 스티브 고든 감독・각본의 영화 "미스터 아서"의 주제가 "뉴욕 시티 세레나데"로 버트 바카락, 캐롤 베이어 세이거, 피터 앨런과 함께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뉴욕 시티 세레나데"는 빌보드 지에서 1981년 10월 17일에 주간 랭킹 1위를 차지했으며, 일본 오리콘 외국 음악 싱글 차트에서 1981년 12월 7일자부터 6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70]
크로스는 1984년 하계 올림픽을 위해 "A Chance For Heaven"이라는 곡을 공동 작사하고 불렀으며, 두 번째 앨범 어나더 페이지는 골드 인증을 받았다.[20]
3. 1. 데뷔 앨범 ''Christopher Cross'' (1979)
크로스는 1979년 12월 20일, 자신의 이름을 딴 데뷔 앨범 ''Christopher Cross''를 발매했다.[12]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 ''빌보드'' 핫 100 20위 안에 진입한 곡으로는 마이클 맥도날드가 백 보컬로 참여한 "Ride Like the Wind", "Sailing", "Never Be the Same" 및 니콜렛 라슨이 백 보컬로 참여한 "Say You'll Be Mine" 등이 있다. "Ride Like the Wind"는 미국 핫 100에서 2위에 올랐고, "Sailing"은 1주 동안 차트 1위를 차지했다.[2] "Never Be The Same"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크로스와 이 앨범, 그리고 "Sailing"은 1980년에 6개의 그래미 상 후보에 올랐으며, 그 중 5개를 수상했다.[13] 제23회 그래미상에서 올해의 레코드 ("Sailing"), 올해의 앨범 (''Christopher Cross''), 올해의 노래 ("Sailing"),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며, 그래미 역사상 한 시상식에서 4개의 주요 부문 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아티스트가 되었다. 이 기록은 39년 동안 깨지지 않다가, 빌리 아일리시가 제62회 그래미상에서 4개 부문 모두 수상하면서 2020년에 다시 한번 이루어졌다.[14][15] 또한, "Sailing"은 최우수 보컬리스트 반주 편곡 상을 수상했다. ''Christopher Cross''는 미국에서 5번의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으며, 5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16]3. 2. ''Arthur's Theme (Best That You Can Do)'' (1981)
1981년 스티브 고든(Steve Gordon)이 감독과 각본을 맡은 영화 "미스터 아서(Arthur)"의 주제가 "뉴욕 시티 세레나데(Arthur's Theme (Best That You Can Do))"로 버트 바카락, 캐롤 베이어 세이거, 피터 앨런과 함께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69] "뉴욕 시티 세레나데"는 빌보드 지에서 1981년 10월 17일에 주간 랭킹 1위를 차지했으며, 1981년 빌보드지 연간 랭킹에서는 12위였다. 이 곡은 일본에서도 친숙한 노래로, 일본 오리콘 외국 음악 싱글 차트에서 1981년 12월 7일부터 6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70]3. 3. 두 번째 앨범 ''Another Page'' (1983)
크로스의 두 번째 앨범 어나더 페이지(1983)는 "올 라이트", "노 타임 포 토크", "씽크 오브 로라"를 프로듀싱했다. "올 라이트"는 CBS 스포츠가 1983년 NCAA 디비전 I 남자 농구 토너먼트 이후 하이라이트 몽타주에 사용했으며, "씽크 오브 로라"는 드라마 제너럴 호스피털의 등장인물을 언급하는 데 사용되었다. 크로스는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ABC가 이 맥락에서 그의 노래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씽크 오브 로라"를 텔레비전 등장인물을 언급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길 잃은 총알에 맞아 사망한 데니슨 대학교 학생 로라 카터의 삶을 기리기 위해 썼다고 밝혔다. 크로스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ABC/제너럴 호스피털이 자신의 의지와 카터 가족의 뜻에 반하여 이 노래를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어나더 페이지''는 판매가 호조를 보여 골드 인증을 받았다.[20] 그는 또한 1984년 하계 올림픽을 위해 "A Chance For Heaven"이라는 곡을 공동 작사하고 불렀다.4. 1980년대 중후반 ~ 1990년대
크로스는 1990년대에 3개의 앨범을 더 발매했지만, 일부 앨범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때 누렸던 대중적인 인기를 다시 얻지는 못했다. 1980년대 중후반에 인기가 하락한 후, 1990년대에는 여러 공연에서 오프닝 무대를 맡거나 다른 가수들의 공연에 참여했다.[26]
5. 2000년대 이후 활동
2002년에는 베스트 앨범 ''Very Best of...''가 발매되었고, 2007년에는 크리스마스 앨범 ''A Christopher Cross Christmas''를 완성했다. 2008년에는 자신의 히트곡들을 어쿠스틱으로 새롭게 녹음한 앨범 ''The Cafe Carlyle Sessions''를 발매했다.[24][25]
5. 1. 코로나19 투병과 회복 (2020-)
크로스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연기되었던 데뷔 40주년 기념 투어를 진행했다.[1]6. 음악 스타일 및 영향
크리스토퍼 크로스는 1979년 음반 'Christopher Cross'(일본 제목: '남쪽에서 온 남자')로 데뷔했다. 데뷔 당시에는 콘서트도 하지 않았고,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는 크리스토퍼 본인의 의향에 따른 것이었다. 천사 같은 하이톤 보이스로 단숨에 AOR을 대표하는 가수가 되었다. 이 음반과 싱글 '세일링(Sailing)'은 1981년 그래미상 5개 부문을 석권했다. 특히 주요 4개 부문(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최우수 신인상)을 동시 수상한 것은 그래미상 역사상 처음이었다.[69] 이 곡은 빌보드(Billboard) 지에서 1980년 8월 30일에 주간 랭킹 1위를 차지했고, 1980년 빌보드지 연간 랭킹에서는 32위를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스티브 고든(Steve Gordon) 감독・각본의 영화 "미스터 아서(Arthur)"의 주제가 "뉴욕 시티 세레나데(Arthur's Theme (Best That You Can Do))"로 버트 바카락, 캐롤 베이어 세이거, 피터 앨런과 함께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뉴욕 시티 세레나데"는 빌보드(Billboard) 지에서 1981년 10월 17일에 주간 랭킹 1위를 차지했고, 1981년 빌보드지 연간 랭킹에서는 12위를 기록했다. 이 곡은 일본에서도 친숙한 곡으로, 일본 오리콘 외국 음악 싱글 차트에서 1981년 12월 7일부터 6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70]
7. 홍학(플라밍고) 모티프
크로스의 앨범 표지에는 홍학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크로스에 따르면, 이는 첫 번째 앨범 표지에 홍학 그림이 사용되었고, 그 이후로 모티프(motif)로 사용되었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한다.[32]
8. 사생활
크리스토퍼 크로스는 자신을 "군인 2세"라고 칭한다. 1950년대 중반 미국 육군 소아과 의사였던 아버지의 아들로, 아버지는 워싱턴 D.C.에 있는 월터 리드 육군 병원에 주둔했으며,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손자녀들을 진료했다.[33] 그는 샌안토니오에 있는 알라모 하이츠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1969년에 졸업했다. 그는 미식 축구와 육상 경기에 참여했다.[34]
크로스는 1973년부터 1982년 이혼할 때까지 로잔 해리슨과 결혼했다. 1988년 얀 번치와의 결혼은 2007년 이혼으로 끝났다.[35] 그는 매디슨과 레인, 두 자녀를 두고 있다.[36][37]
2020년 4월 3일, 크로스는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양성 반응을 보였으며, 앓고 있지만 회복 중이라고 밝혔다. 이후 크로스는 트위터를 통해 다리 사용을 잃었지만, 의사들은 그가 완전히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의사들은 그의 질병이 다리의 신경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길랭-바레 증후군의 에피소드를 유발했다고 말했다.[38] 2020년 10월까지 그는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었지만, 기억력과 언어 능력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39]
2021년과 2022년에는 2020년에 계획되었던 데뷔 40주년 기념 콘서트 투어를 진행했다.[40]
9. 디스코그래피
크리스토퍼 크로스는 다양한 음반을 발매하여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정규 앨범'''
정규 앨범은 스튜디오에서 녹음 및 제작된 앨범으로, 크리스토퍼 크로스의 음악적 역량을 보여주는 중요한 결과물이다.
'''컴필레이션 앨범'''
컴필레이션 앨범은 기존에 발표된 곡들을 모아놓은 앨범으로, 크리스토퍼 크로스의 대표곡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싱글'''
싱글은 주로 한 곡 또는 두 곡으로 구성된 앨범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곡들이 포함된다.
'''참여 앨범'''
크리스토퍼 크로스는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에도 참여하여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선보였다.